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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gger warning: 약간의 잔혹성, 비인도적 행동 있음. 

 

Seven Ravens 

- Regel 

- 성홍 

 

 

마을에는 유독 태양의 축복을 받은 아이가 없었다. 

산골 깊은 곳, 세상과 단절되어 있듯 숨겨져 있는 그 작은 마을에는 태양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무척이나 적었다. 그러나 태양의 축복을 받은 아이가 있어야 농사가 번영하고 밤의 괴이들에게서 보호될 수 있는 세상에서 그런 부족함은 마치 저주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 마을은 언제나 어둡고, 추운 숲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마을에는 한가지, 이상한 전통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태양의 축복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받지 않은 아이는 이름이 적힌 패가 마을 이장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열살이 되기 전, 태양의 축복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면 다른 일반 아이들 중 여섯을 뽑아 재물로 바치고는 했다. 왜 그런 잔인한 전통이 있냐 물으면, 그렇지 않으면 축복을 받은 아이가 채 6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외부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고, 손가락질할 전통이었다. 

그러나 홍중이가 태어난 마을이 바로 이 마을이었다. 

홍중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하필이면 또 가뭄이라 태어난 아이가 몇 없었다. 위로 있는, 열명의 아이 중 둘은 이미 열살을 넘겼고, 하나는 바로 마을 이장의 손자였다. 그래서 태양의 축복을 지닌 홍중이가 나타났을 때, 죽으러 가는 아이는 정해져 있었다. 

홍중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리고 그의 부모가 붉은 머리를 본 순간 그 아이들은 이미 마을사람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다. 

얘들아, 여상아, 우영아, 윤호야- 하고 울부짖는 부모들도, 열살을 넘긴 형제들도, 전부 마을을 시끄럽게 깨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새로 찾아온 태양을 반기느라, 사라진 어둠의 흔적에 환호하느라 그 고통은 쉽게 넘겨졌다. 

김홍중은 태양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이유 하나로 여섯명의 아이를 희생시켰다- 아니. 그의 그 이상한 마을의, 이상한 관습으로 어린애 여섯을 죽였다. 

 

그리고 김홍중은 열여섯이 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다. 

 

##### 

 

“야, 너 그거 들었어?” 

“뭘?” 

“옆집 준 누나. 임신하셨잖아.” 

 

그렇지, 하고 홍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이 워낙 작아서 대부분 누가 있는지 다 기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특히 임신한 경우에는 이장님이 신경을 더 많이 써서... 

 

“준 누나가 가진 애, 축복 받은 것 같대.” 

 

축복?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태양의 축복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었다. 이십년만에 태어난 축복이니만큼 중요하고, 손끝이라도 다치면 호들갑을 떠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한번도 마을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다른 애들처럼 사냥도 나가고, 정찰도 나가고, 가끔 닥치는 괴물들도 궁금했다. 그러나 항상 감시하고 있는 이웃들 때문에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관심을 조금이나 덜 수 있는걸까. 

 

“큰일이네 진짜.” 

 

류서 옆에 앉아있던 환이가 말했다. 

 

“그게 왜 큰일이야? 좋은 거 아냐?” 

 

홍중이가 묻자, 아이들이 서로 불안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 홍중이는 모를 수도 있겠다. 축복이 태어나면 제물을 바쳐야하거든.” 

“소 같은거 얘기하는 거야?” 

“아니... 뭐 우리 또래는 열살 넘겼으니까 안전한데. 원래 축복이 하나 태어날 때마다 일반 애들 여섯명을 바쳐야 한다던데. 마을이 달의 신 영역에 있어서 위험하거든.”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아까 아이들이 눈치보면서 얘기를 꺼내던 모습이, 이런 이유에서였나? 아니, 근데 대체- 

 

“난 그런거 한번도 못들었는데, 진짜로 그런다고? 설마, 그건 너무...” 

 

잔인한거 아냐? 

 

아이들은 어깨를 으쓱였다. 

 

“홍중이 너가 태어났을 때도 제물을 바쳤을껄. 우리 엄마가 그때 얘기를 잘 안하기는 하는데... 나도 원래 형이 한명 있었다고 하더라구.” 

 

그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내가 태어난 것 때문에 여섯명이 죽은거야...? 

“... 울 엄마 말로는 안죽었대.” 

 

조용히 있던 호야가 입을 열었다. 

 

“안죽고... 그.. 숲의 신에게 주는 거라 아마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갈 거라고 하시더라고.” 

 

호야의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마을로 도망쳐온 신녀의 외동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동물들과, 그리고 바람과 대화하곤 했다. 그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홍중이가 만나본 그는 무척이나 정상적이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찾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어?” 

“그런 적은 없지 않아?” 

“물어봐줄까?” 

 

아니, 괜찮아, 됐어. 홍중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걱정스럽게 그를 부르는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홍중아, 와서 저녁 먹으렴. 벌써 여섯시잖니.” 

“네 알았어요, 금방 가요.” 

 

그리고 어느 때처럼 집에 가서,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고, 어색한 침묵 속에 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어느 때와는 다르게, 새벽에 다시 방을 나왔다. 

물론 방문으로는 못나왔다. 앞에서 버티고 있을 이장의 사람들도 있고... 

창문 밖으로 성공적으로 탈출해 길거리를 벗어나자, 작은 마을의 낮은 담벼락이 빠르게 나타났다. 홍중은 저녁에 챙겨두었던 짐을 등에 매고서 그 담벼락을 휘릭 넘었다. 

어렸을 때부터 별을 보러 도망쳐 나왔던 습관 덕이 컸다.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걸 알아채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시, 발,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지,” 

 

하며 욕하면서도 홍중이는 달렸다. 호야의 할머니- 그러니까 연세 지긋하신 그 신녀-가 옛날 얘기해주듯 알려준 숲의 신의 거처는 이틀을 꼬박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산의 절벽 위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자신이 무척이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평생을 갇혀 살아왔던 홍중이에게는 자신 때문에 제물이 된 또래의 아이들이 있다는 건 도저히 눈을 감고 살아갈 수 있는 일이 아녔다. 

 

숲의 신이 관장하는 산 입구까지 하루, 그리고 그 절벽까지 하루 더. 태양빛이 따르는 홍중이는 괴물의 공격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나, 신의 거처에 도달하는 것은 그럼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산의 이름은 무엇이었나. 

 

문득 스쳐간 생각이었으나 대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 신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데, 산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도 없지. 

 

소년은 이름없는 산을 올랐다. 

 

 

#####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이름을 갖는다. 

 

그건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름이 없는 자는 태초의 신, 태초의 그 첫 빛 하나 뿐이고, 세상에 존재함으로서 그것은 이름을 가지게 된다. 사람이 불러주지 않아도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으며, 흔히들 이야기하는 ‘진명’이 그런 것이다.  

 

신은 원래 진명이 없다. 살아있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혼에게 주어진 진명이 없고, 괴이들에게 없듯이 태초의 어머니를 쪼개어 만들어진 수많은 신들은 그저 소멸하여 새로운 신이 나타날때까지, 남이 부르는 이름으로 살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성화는 조금 특별했다. 

 

죽어가는 별들을 관장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 오래전에 죽은 산을 다스리던 자의 무덤에 앉아 버티는. 얼룩진 하늘 너머로 보이지 않는 별들에게서 힘을 끌어오며 사는 그는, 한때 신이 아니었다. 

성화는 ‘그 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가끔 지나치는 바람이 불러주는 이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것이 맞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신은 이름을 가지지 못하니, 당연히- 

그건 신이 되기 전 성화가 가진 이름이었겠지... 

 

이른 새벽햇살이 눈을 찔러왔다. 깜빡거리며 들여다본 하늘은 평소답지 않게 맑아져 있었다. 

 

“저기요!” 

 

웬일로 날씨가 좋나, 하며 고개를 기웃거리던 성화가 무너진 정자에서 나오려고 하자 모기만한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그건 진짜 모기가 낸 소리가 아니라, 어느새 산을 뛰어 올라온 어린 인간이 내는 목소리였다. 

 

“숲의 신님, 맞으시죠?” 

 

고개를 든 소년의 머리카락은 태양을 담은 붉은빛이었다. 새까만 눈에 어울리지 않는. 성화는 숲의 신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신이기는 했기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보통 인간이 여기까지 오면 소원이 있어서가 아니던가. 성화는 신으로서 가치가 적을지언정 인간 한 두명의 소원을 들어줄 정도는 되었다. 

 

“걔는 왜 찾는건데?” 

 

인간은 잠시 멈칫했지만, 허리를 피더니 성화의 눈을 째려봤다. 

 

“당신이 숲의 신이 아니라면 얘기할 수 없는, 그런 부탁 때문에요.” 

“... 네가 찾는 그 애는 이미 한참 전에 소멸했어. 산에 피어오른 악귀들을 보지 못했나? 그것들이 판을 치는데 산의 주인이 나서지 않았을리가 없지.” 

“예?” 

 

소년은 정말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는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리가 없어요. 전 숲의 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구하려고 온 것이거든요.” 

“제물?” 

 

제물을 받는 신이라. 성화가 알기로는 제물을 받는 신이, 흩어져버린 이 곳의 전 주인처럼 약할리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 신은 아주 오래전에 죽었는데. 대체 무슨 제물이란 말인가. 

 

“제물이 이곳에 나타난 적은 없는데. 어떤건데, 개? 소? 양?” 

“제 또래 아이들이요.” 

“...?” 

 

그냥 제물도 아니고, 인간이라? 그것도 여러 명? 그 정도로 욕심많은 신이 아직도 남아 있던가? 

 

“아무래도 너의 그 친구들, 숲의 신이 아니라 다른 자가 데려간 것 같은데. 찾아봐줄까?” 

“당신 같은 인간이 무슨 힘으로 신이 데려간 애들을 찾아내나요?” 

 

아. 

 

아이는 성화가 신이란걸 모르는 눈치였다. 하긴, 누가 보면 산에 몇년 노숙한 것 같은 꼴이기는 했다. 

 

“꼬맹아, 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보니까 너도 태양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 이래뵈도 사람 찾는데에는 재능이 좀 있어.” 

“..... 꼬맹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어, 어떻게 믿어요 그걸.” 

“애들이 언제 사라졌는데?” 

“십육년 전이요.” 

“...” 

“...” 

“그 정도면 이미 죽었을 것 같은데.” 

 

아이, 아니 김홍중이라는 그 인간에게 등짝을 한대 맞은 성화는 억울했다. 그러나 거의 미친듯이 달려온 소년의 꼴을 보아, 못 찾아주겠다고도 말을 못했다. 그래, 좀 힘들면 어때. 

 

“대신 얼마 걸릴지는 나도 몰라. 바로 내일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 

“상관없어요.” 

 

의외로 소년은 딱 잘라 말했다. 눈썹을 치켜세워 의문을 표하자, 홍중이는 굳어진 입매를 애써 끌어올렸다. 

 

“저 때문에 끌려간 애들이거든요.” 

 

 

##### 

 

 

결국 성화는 어차피 심심했다는 핑계를 대며 홍중이를 허리춤에 달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홍중이가 알려준 이름의 흔적을 찾았지만 너무 오래전에 사라지기도 했고, 홍중이나 성화나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흔적 찾기가 지푸라기에서 바늘 찾기보다도 어려웠다. 

몇번이나 홍중이를 설득해 보려고도 했지만, 의지만큼은 강인한 꼬맹이는 혼자서라도 찾아내겠다고 우겼다. 성화는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눈에 밟혀 돌아가려다가도 다시 그 옆에 섰다. 그럴 때면 처음 눈을 떴을 때 만났던 태양신의 사나움이 생각났다. 

 

태양이여, 이래서 이 아이를 축복한 건가? 

 

두 사람은 산을 벗어나 인간들이 모여 사는 안전지대를 지나가야 했다. 그 거리를 건너는 것만 보름이 걸렸는데, 그 중에 대부분의 밤은 마을여관의 가장 값싼 방을 빌렸다. 홍중이를 찾는 마을사람들의 소식도 발 빠르게 찾아왔다. 

 

“결국 준이 누나가...” 

 

그리고 그와 함께 온 충격적인 소식은 더 있었다. 임신했던 마을의 여인이, 하룻밤 새에 사라져버렸다고. 

 

“누나가 혼자 마을을 나갔을 리가 없잖아...” 

“네가 도망쳤을리가 없는 것처럼?” 

 

붉은머리를 애써 두건으로 가리던 홍중이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할말이 없긴 했는데... 

구해온 염색약을 그에게 건네자, 홍중이가 콧등을 찡그리며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생각에 빠진듯, 염색약을 물에 풀어놓고서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염색약 가라앉는다, 빨리 해.” 

 

그제서야 움직이는 소년의 등을 쳐다봤다. 성화에게는 한없이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일 뿐인데. 그들은 삶에 어려운 점도 많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도 포기할 줄을 몰랐다. 

생소한 모습이었다. 

남에게 애정을 가지는 것도, 한번도 만난적 없는 자에게 책임감을 가지는 것도. 인간은 이기적인 생물이 아니던가? 

 

그러니 성화가 만난 홍중은 조금 특이한 인간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잠에 들지 못하는 인간에게, 약간의 신력을 써 잠들게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솔직히, 홍중이는 또 다른 ‘축복자’를 만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마을에도 축복을 받은 사람은 홍중이와 호야의 가족 말고는 나무의 축복을 받은 감나무 집 아저씨 밖에 없었다. 

성화 같이 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정말 드물었고, 같은 축복자였지만 홍중이는 그가 왜 자신을 돕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심심해서? 그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홍중이를 도움으로서 그가 얻을 것도 없었다. 

 

처음 몇주는 의심스러웠기에 거리를 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졌다. 성화는... 믿을 수 밖에 없는 사람 같았다, 그냥. 

 

세달을 꼬박 이동해서 겨우 찾아낸 바닷가에는 높은 절벽들이 겹겹이 쌓이듯 솟아나 있었다. 

 

“저 안에 있는 게 확실해?” 

“어. 저기 아니면... 더 이상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없어.” 

 

두 사람은 절벽 사이에 위치한 작은 틈으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는 위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지만, 넓이는 한사람이 겨우 가야할 정도로 좁았다. 앞에 선 홍중은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한참을 걸으니 통로가 확 넓어지며, 동굴이 나타났다. 

 

여섯개의 철장이 걸려있는 동굴. 인간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은 그것들에는, 까마귀가 한마리씩 갇혀 있었다. 

 

“.... 저게 뭐야?” 

 

여섯 마리의 까마귀. 여섯개의 제물. 분명 아이를 바쳤는데- 

 

X발. 

 

“성화야, 저거-” 

 

- 쿠르릉. 두둑. 

홍중이가 막 성화에게 철창을 꺼내자고 하려는 순간, 동굴의 한쪽 벽이 움직였다. 아니, 그건 벽이 아니었다. 

 

신이었다. 

 

 

##### 

 

 

아주, 아주 옛날의 신들은 제물을 받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인간을 제물로 받아먹은 신들은 힘은 비교할 수도 없이 강해졌지만 동시에 미쳐가기도 했다. 

해안가 절벽에 똬리를 튼 구렁이 신도 역시 그런 부류였다. 숲의 신인척 산골의 아이들을 훔쳐가 자신의 까마귀 전령으로 만들고, 나중에 더이상 날지 못할 때에 잡아먹고. 그 신은 하도 사람과 생명을 많이 죽여 이미 오래전에 이지를 잃은 악신이었다. 

그런 악신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힘에서 태어난 신이 필요했다. 

축복을 받은 김홍중, 그에게는 다행히도. 

 

박성화가 있었다. 

 

 

##### 

 

 

“성화? 박성화!” 

 

희미한 정신 너머로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 바람은 아니었다. 익숙한 목소린데... 

박성화는 무거운 눈을 그대로 감으려다, 자신의 몸을 세게 흔드는 손길에 얼굴을 찡그렸다. 

 

“5분만 더...” 

“박성화 일어나! 너 지금 며칠을 잤는데 또 잔다는 건데?” 

 

홍중이..? 

 

화들짝 놀라면서 깬 그의 눈에는, 일곱명의 소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또렷한 눈으로 성화를 노려보는 그는... 

 

“하....하...” 

“할 말은 없어?” 

“...”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신이 아닌 척해서 미안하다고? 

 

“너, 소멸 안되는 것 맞아?” 

 

어떤 질문에도 변명할 거리가 없는 성화는 홍중이의 날카로운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 냅두고 죽어버리면 내가 저승 찾아가서 다시 죽일 줄 알아라.” 

 

으르릉 거리듯 협박하는 작은 인간의 모습에, 죽어가는 별들을 관장하는 신이 움츠려 들었다. 

 

“나는 저승에 안 가는데 죽으면....” 

“...” 

“.... 나 못 죽어.” 

“... 아 씨, 너도 같이 소멸하는 줄 알고! 진짜! 아오! 한번만 더 그래라.. 절벽 터트려서 묻어 버릴꺼야.” 

 

거의 울듯이, 이제 겨우 삼개월 알고 지낸 사람- 신?-의 팔을 붙잡고 소리 지르는게 귀엽기도 했다. 아, 미쳤나봐 박성화 진짜. 자기가 생각해 놓고 소름 돋아서 머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어쨌든, 다 잘 끝난 것 아닌가. 

 

다행, 이네. 

 

... 저 여섯명을 이제 어떻게 데리고 돌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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