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내 다리 내놔.jpg

*trigger warning: 신체 절단, 유혈

 

 

성화야 너는 내가 다리 하나 잘라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어? 홍중이 턱을 괴고는 물어왔다. 다리 말고 팔도 잘라서 주지. 홍중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성화가 말했다. 으응, 알겠어. 홍중이 김이 샌다는 식으로 대충 대답했다. 요즘 자꾸 뭔갈 확인하려는 식으로 묻는 홍중이 신경 쓰인 성화가 보던 책을 덮었다. 사소한 질문에서부터 지금처럼 실현 가능성 제로인 물음까지. 자신이 홍중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성화를 덮쳤다. 이유를 물으면 금세 궁금해서 물어봤지이. 하고 말꼬리를 늘리며 웃는 홍중에게 홀려서 더 묻지도 못했다.

 

성화야 나는 이거. 홍중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아이스티를 시켜서 돌아온 성화가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으면 홍중은 눈을 동그랗게 휘며 웃었다. 한 모금 마시고는 고마워. 하고 말 한 뒤 더는 마시지 않고 빨대를 잘근잘근 씹는다. 홍중이 눈을 내리깔고 재미가 없다는 듯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홍중이 휴대폰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게 말로만 듣던 권태기라는 것인지 성화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홍중에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나만 잘하면 되겠지 내가 조금 더 사랑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떠나는 홍중의 마음은 돌 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비록 홍중이 헤어지자고 말해와도 성화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 여행 갈래? 성화의 물음에 홍중은 드디어 흥미가 생겼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어쩌면 이별 여행일지도 몰랐다. 일단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대한은 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성화가 홍중의 스케줄에 맞춰서 적당한 펜션 하나를 예약했다.

 

 

여행 당일에 기차를 타고 가자며 기차표를 흔들어 보이는 홍중에 빌린 차를 주차 시키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펜션에 가서 뭘 하고 놀지 정해놓자며 들떠있는 홍중의 얼굴을 잡고 말랑한 볼에 입술을 꾹 눌렀다 떼면 뭐 하는 짓이냐고 타박하면서도 붉게 달아올라 있는 귀 끝에 손을 맞잡고 서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홍중이 그렇게 들떠서 얘기하는 것을 보는 게 참 오랜만이라 성화는 자신이 펜션으로 놀러 가자고 말했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펜션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예 공방이 있어 한바탕 흙을 주무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유약을 발라 구워내기만 하면 된다는 도예 선생님의 말씀에 홍중이 언제 가져가면 되는지 물었다. 내일 이 시간 뜸에 다시 오세요. 환하게 웃으며 그럼 내일 뵙겠다며 공방을 나오는 홍중의 얼굴이 좋아 보였다.

 

늦게 점심을 먹고 펜션에 누워있으면 홍중이 휴대폰을 성화에게 보여줬다. 담력체험이라며 펜션 바로 옆의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뿐이고 혹시 모를 길 잃음을 막기 위해 안전 스태프들이 지키고 있다는 문구에 흔쾌히 신청하고 산 밑으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씨가 꽤 따뜻했는데 해가 지니 조금 쌀쌀한 것이 딱 담력체험 하기 좋은 날씨였다. 홍중과 성화는 왠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주최자의 폐가에 있는 공만 가져오면 된다는 간단한 설명을 듣고 안전을 위해 무전기 사용법까지 익혔다. 먼저 권했지만, 공포 영화도 잘 못 보는 홍중에 둘은 초입부터 꼭 붙어서 산을 올랐다. 곳곳에 있는 안전 스태프들을 보고 깜짝 놀라 자신에게 몸을 한껏 붙여오는 홍중을 성화가 어르고 달래며 간신히 시간에 맞춰서 폐가로 들어갔다.

 

 

똑똑- 계세요? 홍중이 문을 열었다. 네. 성화가 대신 답했다. 아무도 없는데 왜 그래? 하며 방안 중간에 있는 공을 가져가려고 손으로 잡는 순간 뒤에서 홍중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홍중아 왜? 하고 성화가 뒤를 돌아보니 깨진 창문 밖으로 누군가 서 있었다. 그냥 스태프겠지. 성화가 홍중을 다독이며 말했다. 홍중은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자꾸 몸을 떨었다. 성화야 빨리 나가자. 원래 이렇게 겁이 많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홍중은 오늘따라 조금 이상했다. 일단 공은 찾았으니 주머니에 넣고 문을 나가려는 찰나 홍중이 성화의 손을 잡아끌었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성화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손바닥이 까져 피가 배어 나왔다. 홍중이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성화야 저거 봐. 성화가 까진 손바닥에서 시선을 돌려 홍중이 가리키는 것을 봤다. 안전 스태프라니까…. 성화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휘청거리며 넘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이 창문을 통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홍중아 이리와. 성화가 홍중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천천히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것이 고개를 움직였다. 홍중아 혹시 저게 달려들면 너 혼자 내려가서 스태프랑 같이 내려가. 내가 따라 내려갈 테니까.

 

재차 당부해도 말이 없는 홍중에게 뒤를 돌면 바로 전에까지 뒤에서 떨고 있던 홍중은 어디 가고 앞에 있던 다리가 하나 없는 그것이 서 있었다. 성화는 뒷걸음을 치면서도 홍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그것이 중얼중얼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했다. 다리…. 다리…. 다리를 찾는 그것을 피해 산에서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남아 있는 한 다리로 성화의 뒤를 쫓아왔다. 성화는 뒤에서 오는 것과 없어진 홍중 덕에 패닉상태에 빠져 급히 내려다 가다 큰 나무 사이에 솜을 숨겼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스태프가 있어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홍중이는 어떡하지? 겁에 질려 다시 폐가로 들어갔던 거라면 홍중이 위험했다. 아까부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거로 봐선 닷 자기가 있던 폐가 쪽으로 간 게 분명했다. 성화가 고민하는 사이 홍중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이 산을 울렸다. 생각할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쪽을 따라 뛰어가면 홍중이 다리를 잡고 주저앉아있는 게 보였다.

 

 

홍중아! 하고 소리치며 성화가 홍중의 쪽으로 다가가는 데 뭔가 이상했다. 다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 다리가 홍중과 이어져 있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히 홍중이 잡고 있는 다리는 홍중의 것이 아녔다. 성화는 다가가는 것을 멈췄다. 우뚝 서 있는 성화를 보며 홍중이 울먹거렸다. 성화야 빨리 와. 나 좀 일으켜줘. 나 아파.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홍중에 정신 차리고 다가서면 멀리 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잡고 있는 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널브러져 있는 칼과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다리의 절단면이 속을 메스껍게 했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면 허벅지 밑으로 아무것도 없는 홍중이 성화를 바라보면서 손을 내밀었다. 성화야 나 좀 일으켜줘. 성화가 홍중이 내민 손을 모른 척 하며 뒷걸음질 쳤다.

 

 

순간 등 뒤에서 소름이 쫙 돋았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까지는 주저앉아있던 홍중이 휘청거리는 한쪽 다리로 콩콩하고 뛰며 성화 쪽으로 다가온다. 오지 마. 성화가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홍중이 손에 들고 있던 다리 한쪽을 땅에 내려놨다. 홍중아 무슨 일이야? 성화가 멈춰선 홍중을 뒤로하고 밑으로 내려갈 생각으로 말을 걸었다. 빨갛게 핏물이 들어 있는 홍중과 눈이 마주치고는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땅에 놓인 다리가 금방이라도 혼자 뛰어다닐 것만 같았다.

 

성화야. 하고 홍중이 성화를 불러왔다. 성화는 답하지 않았다. 휘청거리며 다가오는 홍중에 뒷걸음질 치고 싶었지만, 뒤에서 누가 자신을 막는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홍중이 핏물이 들어 빨개진 손으로 성화를 잡아 왔다. 성화야, 저번에 내가 물었었잖아. 피가 튀어 비린 냄새가 훅 끼쳐왔다. 홍중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기억 안 나. 성화가 말했다. 그래? 그래도 나한테 줘야 할 거야. 약속했었잖아, 그렇지? 하고는 홍중이 비틀거리며 저 멀리에 있던 칼을 주워왔다. 파랗게 달빛을 반아 반짝이는 것에도 피가 잔뜩이었다.

 

다리를 주세요- 하고 정체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던 홍중의 눈을 피해 성화가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디로 갔어? 홍중이 성화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숨을 참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내려가서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한 걸음 내딛자마자 바스락거리며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홍중이 칼을 들고 소리가 들린 쪽으로 성큼성큼 뛰어왔다. 공포로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내 다리 내놔 하고 낄낄거리며 웃는 홍중이 모습이 마치 처음에 자신을 쫓아왔던 다리가 하나 없는 시체와도 같아 소름이 끼친 성화가 홍중의 어깨를 잡으면 악하고 울려 퍼지는 비명에 황급히 손을 떼어낸다. 홍중아 정신 차려! 성화가 내지르는 고함이 들리지도 않는지 내 다리 내놔. 하며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홍중이 성화를 발견하고는 차근차근 다가온다. 성화야 너는 내가 다리 하나 잘라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다고 했었잖아. 홍중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성화의 다리를 붙잡는다.

 

이거 나 주라.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홍중이 성화의 얼굴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치켜든다. 이거 나 주라 성화야. 더듬더듬 성화의 무릎께를 만져오는 홍중의 손이 차가워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이거 나 달라니까? 성화가 말이 없자 인상을 쓰며 홍중이 다시 말한다. 그때는 팔도 준다고 했었잖아.

 

순간적으로 홍중을 걷어차고 냅다 달리는 성화 뒤로 목소리가 따라붙는다. 팔은 그냥 둘 테니까 다리 주라. 뛰는 와중에도 헐떡임 없이 말해오는 것이 꼭 옆에서 말하는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려고 하면 다리를 달라고 말해오는 목소리에 정신 차리고 펜션으로 계속 뛰었다.

 

 

전날 비가 와 축축해진 잔디를 밟고 정신없이 펜션으로 뛰쳐들어가면 영문을 모르고 숨을 헐떡이는 성화에게 괜찮냐며 물어오는 홍중이 보였다. 오지 마. 성화가 말하자 홍중은 수건을 가지고 성화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었어? 건네오는 수건을 받지도 않은 채 눈이 빠지라 자신을 쳐다보는 성화에게 홍중이 다시 물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네가 없어서 놀랐어. 산책 다녀왔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홍중에 성화는 그만 눈을 감았다. 마치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그 순간 쾅 하고 펜션의 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홍중이 나가보려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가지 마. 성화가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홍중이 심각한 표정을 한 성화에게 물었다. 전에 나한테 다리 하나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냐고 물어봤었잖아, 그거 왜 물어본 거야? 성화가 쾅 쾅 거리며 누가 몸을 문에 부딪히는 소리를 뒤로하고 홍중에게 물었다. 그게…. 홍중이 말끝을 흐렸다.

 

그냥 물어본 거지? 성화가 열리려고 하는 문에서 시선을 고정하고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화는 혹시 몰라 계속 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홍중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의 다리를 더듬는 게 느껴졌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홍중이 서 있던 곳을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홍중이 성화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 팔도, 다리도 주겠다고 했잖아. 빨갛게 핏물이 들어 있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