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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잊은 까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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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과 함께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신지요.

 

최근 폭염이 기승이라던데 당신께서는 잘 지내시는지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세계에서 굳이 느리고 볼일 없는 손편지를 쓰는 까닭은 단지 이 편지가 당신께 느리게 당도했으면  때문입니다. 당도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마 이쯤 되면 의아해하실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의 소년을 기억하시는 지요. 눈 내리는 겨울입니다. 가로등마저 빛을 감춘 거리에 검은 세단이 요란스런 엔진 소리를 내며 정차합니다. 허름한 집 앞입니다. 털어갈 것일람 하나도 없습니다. 유명한 좀도둑조차 오백 원을 던져주고 가는 가난한 동네 중 제일의 집입니다. 처마는 비가 샙니다. 당신은 차에서 성큼성큼 걸어내립니다.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신은 그 뒤꽁무니에 속해 있었지요. 몸체가 큰 것도 아니고 여타 깡패처럼 우락부락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눈이 갔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큰형님이 마루에 오도카니 앉은 제게 다가옵니다. 머리채를 틀어 잡고 뒷골이 끊어지도록 당깁니다. 눈이 맞닿고 교복이 흐트러집니다.

 

 

 

 박종덕은 어디 가고 애새끼만 있어. 동네가 떠나가도록 사납게 외칩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습니다. 아, 여기서 박종덕은 아버지 함자입니다. 씩씩거리며 발을 구릅니다. 당신은 큰형님의 명령에 따라 집안 곳곳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신발을 벗은 채 가지런히 두고 살금살금 움직입니다. 마치 집들이라도 하는 뜻이요.그 쪽을 바라보자니 금반지 여러 개를 낀 손으로 제 뺨을 후립니다. 얼얼합니다. 아파요. 뺨이 불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꿋꿋이 맞고 있습니다.

 

홍중아, 안에 진짜 없냐?

 

없습니다.

 

진짜제? 니 거짓말하면 뒈진다. 알지.

 

 나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왜냐하면…. 화장실에는 어린 동생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분명 거기에서 나오는 것을 봤으니까요. 제발. 부어터진 얼굴로 당신을 애원하듯 쳐다봅니다. 당신은 그러나 제 얼굴을 보지도 않습니다.

 

안에 털어갈 것도 없습니다. 돈 뭉텅이라곤 코빼기도 안보입니다.

 

차라리 박종덕이를 찾는 것이 수금이 빠를 듯싶습니다. 큰형님, 조폭은 잠시 고민하는 듯 싶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니 말은 믿어야지. 나가자 얘들아. 용문신을 한 정장무리들이 일제히 나갑니다. 나가는 길에 한 대씩 툭 치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제외하고는. 당신은 슬쩍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합니다. 왜인지는 모릅니다.그 날 동생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동생은 영문을 모르고 그날 마주친 형아 이야기를 해댑니다. 정장을 입었는데 어색하게 손을 한 번 흔들었다고요.

 

 

 당신의 이름은 홍중입니다. 아직 성씨는 모릅니다.

 

 

이후로도 당신은 종종 찾아왔습니다. 첫날 봤던 껄렁한 정장 차림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옷이 바뀌기도 합니다. 노란색 셔츠일 때도 있었고 예쁜 빨강일 때도 있었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이것저것 얘기를 합니다. 그러다 전화가 오면 재빨리 갑니다. 그 큰형님을 당신은 독사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조직에서 통용되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독사가 부르네. 먼저 가볼게. 성화야. 후다닥 일어섭니다. 그 자리에는 돈 봉투가 남아있습니다. 어떤 날은 얼굴에 시퍼런 멍을 달고 옵니다. 종아리가 퉁퉁 부어 있기도 하고요. 왜 그러냐 물어보면 아무 말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독사가 때렸음을 알고 있습니다. 막연한 추측이었지만 이것을 확신하게 된 것은 나중 일입니다. 후에 서술하겠습니다. 예고없이 후다닥 왔다가 후다닥 사라지는 당신이었지만 그것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도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연하게 불러냅니다.

 

 

 

 여름 바다를 기억하시는지요. 어느 정도 가까워질 적의 일입니다. 당신은 이때까지 꽤 많은 돈을 제게 주었고 이유 없이 정을 주었습니다. 바다 또한 그런 것이었지요. 유난히 덥던 그해 7월 모텔방입니다. 우리는 밤새 같은 침대에 누운 몸이었습니다. 평일 숙박 사만 원짜리 제일 싼 방입니다. 우습게도 몸을 섞지도 입을 맞추지도 않습니다. 그냥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눈을 떠 바라봅니다. 그늘진 속눈썹 동그란 귀 올라간 콧방울 어디 하나 못나지 않습니다. 가만 바라보다 들킬세라 눈을 감습니다. 그러다 시선이 느껴져 실눈을 뜨니, 당신 역시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득 웃음이 터집니다. 우리 둘 다 자는 척하며 서로를 본 것입니다.

 

나 너 보고 있던 거 아니다.

 

알아요.

 

 

 

 당신은 머쓱한지 똑같은 말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진짜 아니라고. 알겠어? 그렇게 우습고 유치한 대화가 반복됩니다. 어느 정도 가다 문맥이 끊깁니다. 둘 다 자지 않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그냥 때로는 그러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너무 소중해서 어쩐지 말을 하면 어그러트릴 것 같은.

 

성화야. 바다 보러 갈래?

 

 

 

그것은 곧 당신에 의해 깨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새벽 두 시에 택시를 잡아타고 바다에 갔습니다. 남들 다 가는 겨울 바다 가을 바다 아닌 여름 새벽의 바다를요.

 

 

 

바닷바람은 언제나 그랬듯 짜고 시원합니다. 머리카락이 흩날립니다. 회색 방파제 앞에 나란히 앉아 다리를 달랑거립니다. 낡은 스니커즈와 검은 구두는 안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가늘게 떠 있습니다. 별도 콕콕 박혀 있습니다. 별 하나에 이름이라던가요. 막상 그렇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제 이름에는 별 자가 박혀 있지만 저는 빛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눈에도 별이 박혀 있습니다.

 

 

 

형은 나한테 왜 잘해줘요.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당신의 눈동자가 밀려오는 파도처럼 흔들립니다. 쏴아, 마침 파도가 철썩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무 말 않습니다. 한참의 정적 끝에 입이 열립니다. 바닷바람이 텁텁합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내 애인이랑 너무 닮아서..

 

 

 

걔는 죽었거든. 미안해 · · · 네가 너무 좋아서…. 미안해. 좋아해서, 좋아해서. 뜻 모를 말을 내뱉으며 당신은 엉엉 웁니다. 부두에서 동네로 돌아가는 길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정작 울고 싶은 건 저인데 우는 건 당신입니다. 택시 안에는 이상한 침묵이 흐릅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라디오 소리를 키웁니다. 이런 순간이 안 익숙했을 탓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울고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얼굴 본 적 한번 없는 이를 미워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요. 치졸합니다. 예가 없습니다.

 

 

택시는 순조롭게 동네까지 다다릅니다. 외진 곳에 있어 돈을 더 내야 했습니다. 물론 내는 것은 당신입니다. 여태껏 신기할 정도로 안 울리던 전화벨이 급작스레 울립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까치야. 어디길래 전화를 그리 안 받더냐. 성난 독사의 목소리입니다. 전파로도 표독스러움이 전해지는 것은 신기합니다. 당신은 조직 내에서 까치라 불립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제비가 마음에 안 든다 했더니 생긴 것이라고 부루퉁하게 털어놓습니다. 금방 간다며 살갑게 말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놓습니다. 응시합니다. 다 부은 눈으로 저를. 저의 소매를 쥐 잡고 시선을 내려트립니다. 가야하는 것이 틀림없는데도 말입니다.

 

 

 

홍중아, 해봐. 야도 좋고 김홍중도 좋아.

 

 

 

당신과 나의 나이 차이는 네 살입니다. 뜬금없는 요구에 눈을 동그랗게 뜨니 나를 채근합니다. 홍중아. 부르자 그는 난데없이 귀를 붉히고는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버려 독사를 향해 뛰어갑니다. 동네 어귀에 남겨진 저는 매우 황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을장마를 아시는지요. 환영 받지 못하는 이입니다. 추수할 곡식이 우수수 쏟아지고 부러집니다. 그 해 장마는 유독 늦은 만큼 독했습니다. 그 말은 마루에 물이 찼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판자 지붕 새로 비가 샙니다. 몸이 덜덜 떨립니다. 동네 어귀를 몇번이나 들락날락했지만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떠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당신은 그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습니다. 벌써 얼굴을 본지가 이주입니다.

 

비가 옵니다. 주욱주욱 장대같이 땅에 내리 꽂힙니다. 창문 틈새로 인영이 보입니다. 어쩐지 크지는 않지만, 눈에 딱 들어오는 게 당신 같아서 버선발로 뛰쳐나갔습니다. 옷이 몸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습니다. 가까이 가니 그제서야 보입니다. 당신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입니다.

 

뭐 하다 다쳐왔어요.

 

....

 

독사를 빵에 넣었어. 다시는 안 나올 거야.

 

비에 쫄딱 맞은 생쥐 꼴입니다. 집으로 당신을 들입니다. 그보다 당신이 따르던 조직의 형님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이 따라와. 시간이 없어. 말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아 우리는 비 내리는 마루에 걸터앉습니다. 계속되는 빗소리 위로 당신의 목소리가 얹힙니다. 택시는 순조롭게 동네까지 다다릅니다. 외진 곳에 있어 돈을 더 내야 했습니다. 물론 내는 것은 당신입니다. 여태껏 신기할 정도로 안 울리던 전화벨이 급작스레 울립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까치야. 어디길래 전화를 그리 안 받더냐. 성난 독사의 목소리입니다. 전파로도 표독스러움이 전해지는 것은 신기합니다. 당신은 조직 내에서 까치라 불립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제비가 마음에 안 든다 했더니 생긴 것이라고 부루퉁하게 털어놓습니다. 금방 간다며 살갑게 말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놓습니다. 응시합니다.다 부은 눈으로 저를. 저의 소매를 쥐 잡고 시선을 내려트립니다. 가야하는 것이 틀림없는데도 말입니다.

 

 

 

홍중아, 해봐. 야도 좋고 김홍중도 좋아.

 

 

 

당신과 나의 나이 차이는 네 살입니다. 뜬금없는 요구에 눈을 동그랗게 뜨니 나를 채근합니다. 홍중아. 부르자 그는 난데없이 귀를 붉히고는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버려 독사를 향해 뛰어갑니다. 동네 어귀에 남겨진 저는 매우 황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을장마를 아시는지요. 환영받지 못하는 이입니다. 추수할 곡식이 우수수 쏟아지고 부러집니다. 그 해 장마는 유독 늦은 만큼 독했습니다. 그 말은 마루에 물이 찼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판자 지붕 새로 비가 샙니다. 몸이 덜덜 떨립니다. 동네 어귀를 몇번이나 들락날락했지만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떠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당신은 그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습니다. 벌써 얼굴을 본지가 이주입니다.

 

비가 옵니다. 주욱주욱 장대같이 땅에 내리 꽂힙니다. 창문 틈새로 인영이 보입니다. 어쩐지 크지는 않지만, 눈에 딱 들어오는 게 당신 같아서 버선발로 뛰쳐나갔습니다. 옷이 몸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습니다. 가까이 가니 그제서야 보입니다. 당신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입니다.

 

뭐 하다 다쳐왔어요.

 

....

 

독사를 빵에 넣었어. 다시는 안 나올 거야.

 

비에 쫄딱 맞은 생쥐 꼴입니다. 집으로 당신을 들입니다. 그보다 당신이 따르던 조직의 형님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이 따라와. 시간이 없어. 말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아 우리는 비 내리는 마루에 걸터앉습니다. 계속되는 빗소리 위로 당신의 목소리가 얹힙니다.

 

말한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시간을 돌렸더랍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그러니까 당신의 현재, 저는 모르는 시간에서는 반대였답니다. 즉 당신은 쌩판 모르는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아야 하는 스무 살이었으며 저는 조직 말단의 배운 것 없는 깡패였다는 소리입니다. 당신의 이야기 속에서 저는 두 번 죽었고 한 번 살았습니다. 처음 만났던 나는 당신과 도망치다 독사에게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저는 당신의 장부를 몰래 조작하다 독사에게 걸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고. 이것이 이뤄져서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곧 당신은 저를 잊어버리고 말 거라고. 그것이 무섭다고.

 

모든 게 급작스럽습니다. 시간 역행이라니. 무슨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입니다. 전부 와 닿지도 않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하는 당신의 얼굴이 너무 절박합니다. 아마 전쟁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표정도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내가 무슨 표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인 것을 아시는지요. 당신이 나에게 해준 말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등가교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이들은 서로를 내던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별을 겪은 후에는 새 사람을 만나거나 긴 시간을 지불해야 비로소 잊을 수 있는 것이지요. 시간을 돌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당신은 저의 기억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죽은 몸입니다. 시체를 끌어안고 우는 당신의 귀에 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주실 건가요?

 

두 번째에는 4년의 수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실패합니다. 이것이 나이차가 정확히 네 살 나는 이유라고 합니다. 마지막입니다. 지금입니다.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이번에 당신은 자신의 기억을 지불하기로 합니다. 제 원래 기일(이렇게 쓰니 이상합니다) 후에는 이름도 출생도 부모도 깡그리 잃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을 더 제시합니다. 걔 인생과 내 인생을 바꿔달라고. 그렇게 조직에서 선비라고 불리던 이와 스무 살 유급생 홍중의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그 날이 원래 기일이었습니다. 열두시까지는 고작 삼십 분도 채 안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이윽고 훌쩍이고 맙니다.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합니다. 손으로 눈물을 훔칩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깥에는 아직도 지가 땅을 침수시키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거세게 내립니다.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으나 우는 당신만은 확실합니다.

 

눈을 좋아하고 여름바다를 좋아했어. 색색의 옷을 사주는 걸 좋아했어. 너는,

 

.... 나는 그런 너를 좋아했어. 아마 몇 분 뒤면 모든 게 없어질 테지만.

 

비가 내립니다. 세찬 물줄기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공백이 부끄러워 졌을 겁니다. 당신은 가만히 손을 겹쳐옵니다.

 

내가 다 기억할게요. 그럴 수 있어요.

 

당신의 얼굴을 감쌉니다. 앳됩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눈물로 범벅이되 발갛게 달아오른 당신의 얼굴은 점차 제가 모르는 얼굴로 바뀌어갑니다. 정답던 눈동자는 반짝임을 잃습니다. 항상 호선을 그리던 입술은 얇게 펴집니다. 봉 실하게 올라와 있던 당신의 볼은 차갑게 식어갑니다. 비로소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이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한순간도 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요. 매 순간 매 순간 그것을 감추지 못했던 것을.

 

 

 

울고 계신데.. 괜찮으세요?

 

낯선 얼굴이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될 당신을 품에 안고 미안하다고 속삭이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 집니다. 나를 마주하던 당신은 매 순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비 내리는 가을입니다. 가로등마저 빛을 감춘 거리에 경찰차 몇 대가 요란스러운 사이렌 소리를 내며 정차합니다. 허름한 집 앞입니다. 털어갈 것 일람 하나도 없습니다. 유명한 좀도둑조차 오백 원을 던져주고 가는 가난한 동네 중 제일의 집입니다. 마당에는 사내 둘이 쫄딱 젖은 채로 서있습니다. 틀림없이 사랑을 했던 이들입니다.

 

후는 당신도 알 것입니다. 경찰에 의해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은 잡혀갑니다. 깜빵에 잡혀간 독사가 당신을 동업자로 꼽았던 탓과 독사의 모든 범행을 상세히 적은 종이 룰 내버려두고 간 이와 체형이고 목소리고 머리 모양이고 똑같았던 탓입니다. 당신은 독사를 잡아넣었으나 그것이 꾀를 부려 같이 가고 만 것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당신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생판 남인 당신의 면회를 주에 한 번은 간 이유입니다. 면회시간은 짧고 짧아 당신께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손을 잡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걸 설명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당신의 이름이나 생일 좋아하는 것을 알려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내일을 당신의 출소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아마 당신은 혼란스럽겠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아직도 시간 역행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언젠가부터 사랑하고 있었음을.

 

벚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말려 동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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