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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하고 높은, 으리으리한 성에는 빨간 머리의 아이가 살고 있었어요. 그 아이는 제법 쾌활했고, 장난기가 넘쳤지만, 예의가 발랐고, 그리고 또-

 

  "작았지."

  "시끄러."

 

  어라, 빨간 머리의 아이 옆에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서 있네요. 둘은 앙숙이라도 되는 걸까요? 빨간 머리의 아이가 잠시 검은 머리의 남자를 째려보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싸움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싶은데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검은 머리의 남자가 빨간 머리의 아이의 얼굴을 감싸더니, 둘은 어느새 포옹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떤 사이인 걸까요?

 

  그러니까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한참 먼 옛날에 시작된 이야기.

 

*

 

  홍중은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착실한 아이였습니다. 이 나라의 왕실에 태어난 아이에게는 꼭 지켜야 하는, 전통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네, 맞아요."

  "네가 올해 몇 살이지?"

  "열 여덟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말을 잇지 못하고 뜸을 들이는 어머니의 표정을 눈치챈 홍중은 부러 밝은 얼굴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요즘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도 들었어요. 어머니도 그러셨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그 숲에 보내려니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괜찮아요. 별 일 없을 거예요. 꼭 무사히 돌아올게요."

 

  네, 맞아요. 그 전통이 뭐냐면, 바로 열 여덟 살 생일에 성을 떠나 '어둠의 숲'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운이 좋으면 운명의 상대-백마 탄 왕자님!-를 빨리 만나 운명적인 의식-이라고 하면 키스겠지만, 홍중은 아직 모르는 것 같으니 비밀로 합시다.-을 치르고 빨리 돌아올 수 있지만, 운이 나쁠 경우엔... 오래 걸리기도 하겠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숲에는 그 전통을 도와주는 난쟁이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

 

  홍중은 어머니가 챙겨 준 간식을 먹으며 길을 나섰습니다. 성에서 꼬박 하루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거리라기에 조금 무섭긴 했어요. 태어나서 지금껏 성을 멀리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호기심이 많아 평소에도 창문에 기대어 밖을 몇 시간이나 구경하곤 했기에 이렇게 바깥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들뜬 마음도 꽤나 컸답니다. 그러니까 두근거리는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의 반, 경계하는 마음 반의 반의 반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잎사귀에 놀랐다가, 바람 소리에 놀라 돌아봤다가, 안도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숲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얘기로만 듣던 어둠의 숲이었어요. 이제 도와줄 난쟁이들만 찾으면 되겠네요!

  하지만 어둠의 숲은 이름값을 톡톡히 했습니다. 분명 방금 전에는 햇빛이 가득한 낮이었는데, 숲 안으로 몇 발짝 들어가자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홍중은 어둠이 눈에 익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습니다. 귓가엔 낮은 바람소리, 저 멀리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왔어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숲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주 높고 두꺼운 나무들로 가득했고, 위를 올려다봐도 빽빽한 나무들 덕에 햇빛이 느껴지지 않았답니다. 홍중은 조금 무서워져서 메고 온 가방 끈을 꼭 쥐었어요. 아무리 살펴봐도 당장 주변엔 아무 것도 없었기에 얼른 난쟁이들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머리를 굴리다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손바닥에 나뭇잎을 하나 주워 올려놓고, 바람을 후-하고 불어보려는 순간-,

 

  "사람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물체들에 깜짝 놀라서 그만-

 

  -아아,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지 뭐예요.

 

*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은 정말 머리가 아픈 것보다 머리맡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말소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홍중이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어 조심스럽게 눈을 떴더니, 주변은 훨씬 시끄러워졌습니다.

 

  "눈을 떴어!"

  "눈을 떴어!"

  "뭐라고?"

  "뭐라고? 눈을 떴다고?"

  "그래! 이것 봐!"

  "이것 봐!"

 

  ...제발, 한 명만 말할 순 없는 것이었을까요?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홍중은 입 밖으로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이 곳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왠지 불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틀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발은 침대에서 한참 바깥으로 뻗은 상태였고, 이불은 배만 겨우 가릴 수 있을 정도였고, 천장은 거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누워 있는 홍중과 아주 가까웠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홍중은 바로 이 곳이 난쟁이들의 집임을 알 수 있었어요. 난쟁이들은 생각했던 대로 작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주 시끄러웠어요. 자기들끼리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계속해서 쫑알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 머리가 빨갛고... 살은 하얗고, 눈동자는 검네."

  "혹시?"

  "혹시?"

 

  홍중은 자신을 향하고 있는 눈동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줬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게 맞다고요.

 

  "혹시, 백설이신가요?"

 

  그 중 가장 똘똘해 보이는 난쟁이가 물어왔습니다. 정확하네요.

 

  "응, 맞아. 다들 날 그렇게 불러."

 

  홍중은 성에서 '백설'이라고 불렸습니다. 어릴 적에는 왜 내 이름은 홍중인데 백설이라고 부르냐며 의아했지만, 어머니에게 왕실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후로는 이해했습니다. 왕실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백설이라고 불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게 공주이든, 왕자이든 상관 없이 말이죠. 홍중은 태어날 때부터 백설이라고 불렸으니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난쟁이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시끄럽던 난쟁이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홍중은 아주 잠깐 이 공간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와! 이번 백설은 남자구나!"

 

  자기들끼리 뭐가 그렇게 신난 거야? 백설-아니, 홍중은 자신만 빼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약간, 외로웠어요. 하지만 초면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싶어 우선 어떤 곳인지 눈으로 둘러보며 파악하기로 했습니다. 난쟁이들이 사는 오두막인 것 같네요. 모든 것들이 작았습니다. 홍중도 키가 작은-부정하고 싶지만-편이지만, 자기보다 작은 난쟁이들이 사는 곳은 모든 것이 작았습니다. 의자도, 침대도, 옷도, 요리 도구들도.

  그리고 난쟁이들도 마찬가지로 작았는데, 어림잡아 보니 대충 50센티미터 정도는 작아 보였어요. 난쟁이들은 모두 7명이었어요. 다들 얼굴은 다르게 생겼고-당연한 거겠지만 말입니다, 홍중은 난쟁이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었어요-자세히 보니 그들 사이에서도 나름 키 차이가 있었답니다. 그래도 자기보다 큰 난쟁이는 없었어요.(이것 역시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자기들끼리 한참을 얘기하고 있는 난쟁이들 속에서 홍중은 한 명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첫인상은 날카롭다는 느낌이었는데, 뭐랄까, 뱀 같기도 하고-홍중은 뱀을 무서워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그리고, 그리고...

 

  뭔가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분명 오늘 처음 본 것일 텐데?

 

*

 

  "얼른!"

  "얼른얼른!"

 

  이걸.. 꼭 해야 하는 거야? 홍중은 울고 싶은 얼굴로 난쟁이들을 둘러봤습니다. 저 결연한 표정들을 보니 안 하면 밥그릇도 안 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홍중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었습니다.

 

  "호.. 홍중."

  "작아!"

  "작아! 작아요!"

  "더 크게!"

 

  그거 조금 작게 했다고 몇 명이 잔소리를 하는지, 참. 거의 울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눈 한 번만 딱 감기로 합니다.

 

  "홍중!!"

  "성화!!!"

  "윤호!!!!"

  "여상!!!!!"

  "산이!!!!!!"

  "민기!!!!!!!"

  "우영!!!!!!!!"

  "종호!!!!!!!!!"

 

  "끼릿끼릿 끄르르라!!!!!!!!"

 

  대체 왜 밥 먹을 때마다 이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엔 친절하던 난쟁이들이 그렇게 정색하는 건 처음 봐서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조금...... 쫄았습니다. 난쟁이 중 막내인 종호가 외치는 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는 것은 비밀입니다. 귀를 막을 뻔한 것도 비밀입니다. 손이 올라갈 뻔하다가 윤호랑 눈이 마주쳐서 스르륵 내렸습니다. 윤호라서 망정이지, 우영이나 산이었다면 며칠을 놀려댔을 것입니다.

 

  "으하하하!! 백설 방금 손!"

 

  ...취소입니다, 윤호도 별 다를 것 없었군요. 하지만 윤호도 입이 찢어져라 웃다가 옆에 앉아 있던 성화가 하지 말라는 듯 어깨를 잡으니 조용해졌습니다. 홍중은 약간의 고마움이 담긴 눈인사를 던졌고, 성화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동안 지켜 본 결과, 성화는 다른 난쟁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행동도 그렇고, 말투도 나긋했고 친절했습니다. 다른 난쟁이들이 장난꾸러기라면 성화는 조금 차분하고 어른스러웠어요. 덕분에 홍중은 성화에게 조금 더 의지하며 생활했습니다. 가끔 자신을 보며 슬픈 눈을 할 때가 있었는데, 무슨 일이냐며 입을 열기 전에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떴기에 그 이유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난쟁이들에게 성화에 대해 물어보려 하면 다들 한껏 어색한 목소리로 아, 저기, 그, 저는, 모르는, 데요? 하며 삐걱거렸기에 더 이상 캐묻기도 민망하여 관뒀습니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

 

  "이제 좀 있으면 오지 않을까?

  "좀 있으면?" 

  "누가 오는데?"

  "누가 오는데?"

  "그, 백마 탄 왕자 말이야."

  "백마 탄 왕자?"

 

  난쟁이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떠들고 있길래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어 봤더니, 그렇군요. 그 '운명의 상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홍중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는 백마 탄 왕자가 와서 구해주면 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뭐라고 하셨더라. 사과를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숲에 온 이후로 사과를 먹어보진 못했는데. 그럼 돌아갈 수 없는 걸까요? 갑자기 덜컥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티가 났던지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데, 역시나 다정한 목소리-성화였습니다.

 

  "백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아, 아니. 별 거 아니야."

 

  성화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평소에 자신을 챙겨주느라 가장 늦게 밥을 먹고, 가장 일찍 일어나 잠자리를 돌봐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까지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데,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홍중은 그 덕분에 더 스스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생각만 그랬지 제법 덜렁거리는 타입이었기에 성화의 손길이 안 닿는 날이 없긴 했습니다.

 

  "…당신은 늘 그랬죠."

  "어?"

  "아니에요. 오늘 아침은 백설이 좋아하는 감자수프예요. 우영이가 특제 소스를 넣었다고 하니 기대하세요."

 

  성화는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이불 빨래를 하겠다며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이불을 돌돌 말아 든 채로 뒤뚱거리며 걷는 뒷모습이 조금 귀엽기까지 했는데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홍중은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나 감자수프 좋아한다는 말, 한 적 없는데.

 

*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홍중은 어느 날 잠이 든 후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난쟁이들은 난리가 났어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백설이 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느냐고. 그 중에서도 성화는 사색이 되었습니다. 누가 백설에게 사과를 먹인 거야? 식사 당번인 우영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 아니야. 백설 오고 나서 사과는 손도 안 댄 거 알잖아. 일부러 사과나무 쪽으로는 가지도 않았다고. 그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사건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졌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삼 일이 지나도 홍중이 깨어나지 않자 그것 자체가 더 심각한 일이 되었습니다.

  왕자새끼는 언제 온대? 낸들 아냐, 저러다 백설 죽으면 어떡-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말어. 지난번 백설도 열흘은 가뿐히 넘겼다고. 아무리 그래도 저러는 거 보고 있으면 불안하잖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야, 말소리 좀 낮춰. 성화 씨 들어. 아 맞다 ......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성화는 백설이 깨어날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옆에 붙어 간호했습니다. 사실 아픈 것은 아니라 간호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어쨌든 얼굴도 닦아주고 옷도 갈아 입혀주고, 혹시나 깨어나지 않을까 잠도 옆에 의자를 붙여놓고 쪽잠을 잤습니다. 백설이 깨어날 때까지였다는 것은, 네, 말 그대로입니다. 어느 날 말을 타고 온 옆 나라 왕자라는 놈은 자신이 백설을 구하러 왔다며 난쟁이들을 옆으로 물러나게 하고 허리를 숙여 백설에게 입을 맞췄더랬죠.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난쟁이들은 하나같이 성화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성화는 눈빛으로 그 왕자를 죽일 것만 같았어요. 다들 얼른 백설이 깨어나서 성화를 안정시켜주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왕자의 입맞춤으로도 백설은 눈을 뜨지 않았어요. 왕자는 물론이고 난쟁이들도 퍽 당황했습니다. 아니, 왕자 맞아요? 맞다니까. 근데 왜 백설이 깨어나지 않냐고요, 이 새끼 왕자 아니고 사기꾼 아니야? 아, 아니 이 난쟁이들이 지금 누구더러 사기꾼이라고! 나가 이 새끼야, 나가! 꺼져! 옆 나라 왕자는 결국 난쟁이들에게 쓰레기를 투척당하며 쫓기듯이 도망쳤습니다. 그날 밤 난쟁이들은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지금 중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모였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그렇지?"

  "다들 동의하는 거죠?"

 

  성화만 빼놓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계속 말이 없던 성화에게 12개의 눈동자가 꽂혔습니다.

 

  "뭐?"

  "저희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진짜 오래 생각했거든요. 성화 씨 없을 때."

  "별로 오래되진 않았잖아?"

  "조용히 좀 해봐."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알겠는데, 나는-"

  "직접 하셔야겠어요. 얼른요."

 

  난쟁이들은 성화의 목덜미를 잡고, 등을 밀고, 팔짱을 끼고-영차 영차, 침대에 누워 있는 백설 앞으로 그를 끌고 갔습니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을까?"

  "네, 확실해요."

  "왕자새끼 안 통하는 것 다 봤잖아요."

  "얼른요."

  "얼른!"

  "뽀뽀해! 뽀뽀해!"

 

  성화는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니 사실은 숙일 필요도 없었죠. 그의 키는 아주 작았으니까요. 오랜만에 내려다 본 얼굴은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여전히 예쁘네."

 

  "우우-닭살-"

  "넌 조용히 좀 하라니까."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성화의 입술이 백설-그러니까, 홍중에 입에 닿고 떨어질 때까지 오두막 안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난쟁이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몇 번 지나가고 나서야-

 

  "흐억!!"

 

  숨을 한껏 들이쉬며 홍중이 화들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홍중은 그저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지만, 곧이어 아주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홍중의 손을 붙잡고 있는 얼굴은,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나의-

 

  "뭐,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기억이 돌아온 거야?"

 

-연인이었던, 성화였습니다

 

 

 

 

Ps. ‘더 크로스(The Cross)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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