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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순간부터 마을과 동떨어진 작은 기왓집에 사는 과부가 다리 없는 짐승을 아들 삼았다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이 어느 정도였냐. 방물을 팔며 사는 아파들이 마을만 들어갔다 하면 쑥덕대는 그 소리들이 지겨워 도적을 마주칠 각오를 하고서라도 그 곳을 넘어 다음 고을로 향하곤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소문은 얼마 가질 못했는데.. 워낙에 참하고 마음씨 고운 그 과부가 마을에 내려올 때마다 소문을 접하면 표정이 메스꺼워져 입을 다무니.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양심이 뚫리는 게 아니겠는가. 금방 불씨가 꺼진 소문은 머리에 남을 지언정 그 기억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건너뛰고, 그 마을의 가장 큰 집이 대제학 대감 댁이었는데 괴상한 소문을 거의 꺼뜨린 그 과부가 마을에 내려오지 않았던 날이었다. 동짓날이라 달도 밤의 꺼풀에 잠겨 유독 어둡고 으시시한 때이기도 했다. 어른 밤에 대문짝 소리도 안 나겠다, 대제학 대감과 마님은 일찍 침방에 드시고 몇몇 종놈들이나 남는 팥죽이나 얻어먹을까 깨어있었는데 담에 있는 기왓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다. 아가씨만 셋인 이 집에 밤도둑이라도 든 것일까, 놀라 수저를 놓치고 장정 셋과 행랑어멈이 급히 뛰어나가니 간소한 복장을 한 그 과부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엎어져 있는 게 아니겠는가. 어찌 할 도리를 찾지 못해 일단 사람 행세를 하는 귀신인지 아닌지 말을 걸으니 과부가 물 섞인 목소리로 그 집안 주인들을 찾는다. 한바탕 벌어진 소동에 그 댁 마님은 잠에서 덜 깬 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미 마당에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거기 무슨 일 있느냐?”

 

과부는 그 목소리를 듣곤 활짝 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부인!”

 

“박씨 부인! 이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정도 많고 손 아랫 것들을 자주 챙기던 살가운 사람이기도, 과부가 신랑을 잃기 전부터 친우이기도 했던 마님은 흙바닥에 엎어져 있는 과부를 일으켜 세우고 물었다.

 

“저 좀 살려주십쇼. 제 아들 좀 말려주십쇼, 부인.”

 

“아니, 부인께 무슨 아들이 있다고 그렇소. 진정하시게 차라도 마십시다.”

 

정신이 나자빠진 것처럼 보이는 과부의 모습에 대제학 마님은 급히 종 하나를 시켜 차를 대접하라 일렀고 둘은 함께 안채로 들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반년 전 쯤 과부의 꿈자리에 눈매가 매서운 아이가 자기 품에 안겨 웃고 있었다고, 그 아이가 너무나도 귀여워 자꾸 쳐다보며 놀아주니 매서운 눈매가 뱀의 것으로 변하고 몸이 미끈미끈 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고것이 자신을 해칠 것 같지가 않아 놀라지도 않고 꼭 껴안고 있었는데 꿈을 꾼 날 아침에 첫 끼를 때우려 부엌에 들어가니 소쿠리에 또아리를 뜬 뱀이 있었단다. 그 뱀을 보고 놀라 나자빠지긴 했으나 자신의 꿈에 나온 구렁이와 너무 비슷해 겁을 잃고 가까이 가니 사람 따르는 강아지마냥 제 얼굴을 팔에 부비는 것이란다. 놓아주기엔 어딘가 꺼림찍해 외로워서 잠시 돌봐주는 거라며 끼고 살았는데 삼개월이 지나 사람 말을 배웠단다. 그러다가 이젠 저 마을의 대감 댁 자식 중 한 명과 결혼을 시켜달라 조르니 말리다 못해 이 집으로 도망을 왔다, 그리 일렀다.

 

대제학 부인은 이게 뭔 소린고 하며 듣다가, 오랜 친우가 거짓을 말할 리 없다며 손을 꼭 잡아주다가, 뱀이 제 자식과 결혼하려 든다는 걸 듣자 힘을 쭉 풀었다.

 

“혼인을 시켜주지 않으면 확 제 뱃 속에 들어가 버린답니다. 허락하지 않으면 부인과 대감을 데려오라며 난리입니다, 이를 어쩝니까.”

 

뱀의 이름은 성화라며, 자신의 성을 따 박성화라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듣자하니 부인은 이게 거짓은 아니구나 싶었다.

 

“일단 방을 하나 내어줄테니 거기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대감은 제가 아침에 잘, 어떻게든 말해보겠습니다.”

 

 

다음날 과부의 집에 향한 부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뱀이 사람 말을 하고, 과부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어디를 다녀오셨냐 떼를 쓰질 않나. 심지어는 자신을 소개하며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홀린 듯 말을 시작하니 술술 튀어나오는 뱀의 이야기가 부부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그래서 우리 딸들 중 한 명과 자네를 혼인시켜달라는 것인가?”

 

뱀의 말이 하도 유창하니 부부는 뱀을 인간마냥 대하기 시작했다.

 

“제가 어찌 귀하게 자란 분들을 넘보겠습니까. 그저 댁에 숨어계신 자식이 계실텐데, 어차피 저도 한평생 들키지 않고 살아야 할 터 비슷한 처지끼리 함께 사는 게 어떤가 싶어 떼를 써보았습니다.”

 

그 말에 걱정을 담은 과부의 눈이 한순간 휘둥그레졌다.

 

“숨어있는 자식이라뇨? 대감 댁에는 딸만 세 명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

 

대제학 부부는 한동안 말문이 막혀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 집에는 둘째 딸보다 먼저 태어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머리카락이 시뻘겋게 났다. 바깥의 눈을 피해 집 안에만 살아 가족과 시중을 드는 입 무거운 시종 몇을 뺀다면 아는 사람이 없는 처지의 가엾은 아이였다. 그리 태어나 저주받았다는 말을 들을까 혼기가 꽉 차도 애지중지 숨겨 키우던 아이라 바깥 구경조차도 글로 배운 아이인데. 그건 또 어떻게 안 것인지 뱀의 신통한 말에 부부는 결국 과부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름은 홍중이라는 말로 끝맺으니 한번에 많은 일을 알고 겪은 과부의 손이 덜덜 떨렸다.

 

“전 몰랐습니다. 이리 오래 알았으면서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모르셔야 되지요. 저희가 그리 키웠는데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짧은 정적을 뒤로 하고 대제학 대감은 급히 일어섰다.

 

“일단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부인. 아들에게 전해는 보겠으나 안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일겁니다.”

 

뱀은 대감의 말을 듣고도 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다만 조심히 가시라는 상냥한 인사만 남겼을 뿐이다.

 

 

홍중은 그 말을 전해듣고는 생각해보겠다며 제 방에 돌아갔다. 그의 첫째 누이는 그보다 늦게 그 말을 듣곤 경악하며 안된다 반대를 했지만 그는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나와 혼인을 하겠다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가 내건 조건은 단 두개, 이 일에 대해 아는 양가 가족들만 혼인에 참석하는 것과 자신을 위해 마련한 재산을 혼인 후 자신에게 주는 것. 뱀도 그 말을 듣곤 가릴 게 뭐가 있겠냐며 좋아했고 매파가 왔다갔다 할 새도 없이 모든 게 해결됐다. 고집 센 홍중은 이를 거절할 노릇이었으나 뒤집힌 이유는 뱀이 밤 꿈에 나타나 말을 건 탓에 여러모로 흥미가 돋았기 때문이었다.

 

혼인은 이렇다 할 일이 생기지 않고 빠르게 끝났으며 신방에도 해가 지기 전 들게 되었다. 뱀과 인간이 결혼을 했다는 해괴한 사실은 우리가 살던 고을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족두리를 저 혼자 내린 홍중이 성화에게 물었다.

 

“제 꿈에는 왜 나오셨습니까?”

 

뱀에게 건 첫마디에서 그는 존대를 썼다.

 

“당신을 안다는 걸 잠깐이라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싱거운 대답에 홍중이 미소를 지었다. 귀찮은 활옷을 벗어던진 그가 편한 소복만 입고서 침소에 눕자 뱀은 저만치 떨어진 방바닥에서 또아리를 틀었다.

 

“거기서 주무실 겁니까?”

 

“네.”

 

“그래, 내일 아침에 봅시다.”

 

돌아선 홍중의 등이 성화의 생각보다 더욱 작았다.

 

 

그리 산지 보름 즈음이 되었을 때 중 하루는 홍중이 옷을 통해 등에 닿는 서늘한 감각에 잠에서 깼다. 차가운 뱀의 비늘이 찰싹 붙어있던 탓이었다.

 

“드디어 일어나셨습니까, 해가 벌써 중천입니다.”

 

“시간이 잘 지나지 않아 자주 잠을 자다보니 이리 됐나 봅니다.”

 

조심히 물러나는 뱀의 움직임이 홍중의 눈에 훤히 보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익숙하여 그리 말하는 것이니. 그보다 저에게 미안하시다면 말이나 놓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신분의 귀천 없이 함께 돌아다니며 살 터인데.”

 

“…그럴까요?”

 

“놓자니까 대답을 높여하네.”

 

홍중의 말을 듣고 황당해진 성화가 뒤로 다시 한번 물러서자 짖궃은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이야. 갑자기 놓는 건 어렵나? 가족이나 수족말고 다른 것하고 얘기하는 건 오랜만이라.”

 

키득키득 웃는 홍중의 모습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기 때문에 성화는 실없는 농담을 같이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밥도 굶은 채 정신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보니 바깥은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너 나한테 자꾸 임자라고 부르지 마.”

 

“싫어?”

 

“어, 맘에 안 들어.”

 

“그럼 그냥 이름으로 부를게.”

 

“그래, 그건 좋다.”

 

그렇게 잠자리에 든 다음날, 뱀은 한 가지를 그에게 부탁했다. 밀가루와 물, 그리고 간장을 한 독씩 주방에 준비해달라는 의아한 부탁이었다. 홍중이 몇 번을 되짚고 물어보아도 뱀은 대답이 없었고 결국 주방에 준비를 해두니 쏙 들어가 문짝을 잽싸게 잠군다. 하루만 대감 댁에 들렸다 오라는 말만 남긴 채 답을 안 하는 게 괘씸해 한 발을 구르고 부모의 집에 들른 홍중이었다.

 

 

그의 첫째 누이는 그 말을 듣고는 어찌 그럴 수가 있냐며 금방이라도 대문을 나설 기색이었건만 홍중의 옆에 앉은 어린 막내가 울음보를 터뜨리자 금세 화를 누그러뜨렸다. 누이의 화로 대화에 끼어들고 있지 못하던 둘째가 처음으로 말을 꺼낸 건 그 뒤의 일이었다.

 

“하루라고 해도 형님을 내쫓은 것이 아닙니까?”

 

“생각이 있겠지. 뱀이 말을 하는 걸 보니 과거도 보지 않은 나보다 비상하지 않겠느냐?”

 

그의 둘째 여동생이 입을 열자 홍중은 장난스런 대답을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걸 보는 첫째 누이의 표정이 영 좋지가 않아 홍중이 입을 합 다무니, 그녀의 걱정스런 말투가 그의 귀에 스며든다.

 

“재밌니?”

 

“예?”

 

“난 니가 그 뱀에 단단히 홀린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된다, 그 뱀 눈깔이 영 맘에 들지가 않았어.”

 

“저는 이렇게라도 세상 구경을 할 수 있어 좋네요.”

 

할 말이 없어진 첫째 누이가 포기하고 한숨을 쉬니 홍중의 표정이 한결 맑아진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련히 잘 살겠지요, 죽으면 혼으로라도 찾아오겠습니다.”

 

“그런 말 그만하고 이제 늦었으니 그만 자렴. 니가 쓰던 방을 아랫것들이 아직 아쉽다며 정리하지 않았다.”

 

 

제 형제들과 이야기를 하니 신나 아무렇지도 않는 척을 했다지만 그 넷 중에서 가장 걱정이 많은 건 홍중이었다. 익숙한 이불에서 부스럭거리며 졸음을 조각내니 해가 뜨는 건 금방이었다. 눈 밑이 시커메진 채로 의복을 차려입고 급한대로 양반 체질을 내려놓고 길을 향했다. 오다보니 문안인사도 잊고, 그의 형제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까먹었다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뱀은 어딜 가고 멀끔한 비단복을 입은 곱상한 선비 하나가 그를 반긴다.

 

“그쪽은 누구신데 제 집에 있습니까?”

 

빙글빙글 미소만 띄우던 선비가 그 말에 웃음보를 터뜨리더니 그에게 다가갔다.

 

“이 집에 있는 게 누구겠어?”

 

“선비님 얼굴은 생전 보도 못했습니다. 말에 답이나 하십쇼.”

 

“내 눈 좀 봐봐, 진짜 모르겠어? 겨우 하루 못 봤다고 목소리도 잊은거야?”

 

구렁이 하나 있던 집에 이게 무슨 소린가. 홍중은 선비의 눈을 유심히 바라봤다. 뱀 눈깔을 닮은 것이 어째 자신을 깨우던 것과 닮아보인다. 그 신통한 게 생각나 주방을 휙 돌아보니 뱀이 있어야 하는 자리는 비어있다.

 

“너 뱀이야?”

 

“이제 사람이야.”

 

홍중은 말을 잃었다. 그가 자신이 누이의 말대로 단단히 홀렸나 싶어 성화의 팔을 턱 잡으니 찬기가 금세 몸에 꽉 오른다. 천년 묵은 여우나 이무기도 아니고, 구렁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듣도 못했기에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벙벙하게 서있던 그는 성화가 내미는 비단 주머니에 정신을 차렸다.

 

“이건 뭐야?”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그 안에 곱게 개인 뱀 허물을 본 홍중은 깜짝 놀라 성화를 쳐다봤다.

 

“이런 건 선물로 별론데.”

 

“아까 말했잖아. 그거 태우면 나 여기 못 와.”

 

“그럼 왜 날 줘?”

 

“아니, 그냥…. 혹시 모르니까. 뱀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난 그것보다 니가 어떻게 사람이 된지 궁금한데.”

 

제 옷 안 쪽에 비단 주머니를 집어넣은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성화를 향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빙글빙글 웃던 웃음은 어디로 간 채 당황에 절은 모습이 난처해보였다.

 

“나도 몰라.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진작에 말이나 해두지.”

 

한층 어색해진 분위기는 둘의 대화를 점점 줄여갔다. 정적인 상태로 들어간 집 안에서 처음 말을 꺼낸 것은 성화었다.

 

“그 비단 주머니 되도록이면 누구한테 보여주지마.”

 

“이거? 알았어.”

 

해가 중천이라 한창 말이 많아야 되는 신혼부부는 그 말 뒤로 입이 닫혀 꼭 사이에 대문짝이 하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흐름에 지친 홍중이 먼저 귀찮은 겉옷을 훌훌 던지고 개어지지 않은 침소에 쓰러지듯 누웠다. 평소 일어나던 것보다 한 시진은 일찍 일어난 홍중의 힘이 다했던 탓이었다.

 

“나 좀 잘 건데, 자는 동안 마을 구경이라도 하고 와.”

 

“아….”

 

“난 어차피 못 나가니까, 신경쓰지 말고 갔다와. 괜찮아. 정 신경쓰이면 간식거리라도 사다 줘.”

 

“알았어.”

 

사각거리는 옷자락 소리가 귀에 스쳤다. 홍중의 위에 드리웠다 금세 사라지는 그림자는 그의 머리칼을 미련갖고 쳐다보는 성화의 동정심과 비슷했다.

 

 

장이 선 마을의 모습은 사람 사는 내가 온기로 풍길 정도였다. 벌써부터 술을 나눠 마시는 주막의 쟁반 소리와 왁자지껄하니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장사치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말로만 옮겨 들었던 모습에 빠져들어 금세 넋을 잃으니 해는 금방 닳아 어둠을 보인다.

 

“거기 나으리! 아까부터 보이시던데 요 약과라도 하나 사가시지 않으렵니까?”

 

“맛은 어떤가?”

 

“있고 말고요.”

 

“몇개 담아주게.”

 

김홍중 석 자가 성화의 머리에 떠오른 탓이었다. 손에 낙낙하게 들린 것을 보며 그의 반응을 생각해 괜히 입가를 씰룩였다. 급히 발을 돌리려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진다. 자연스레 고개를 쳐들어보니 검은 연기가 뱀 구르듯 일렁일렁 그의 집 쪽에서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혹여나 불이 난 것일까 주먹을 꼭 쥐고 제 숨이 차며 뛰어가는데 어째 집은 가까워지지 않고 몸은 무거워진다. 허물이 다 탔구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의 다리가 달리는 것을 멈췄다. 허무한 마음에 애꿏은 무릎만 퍽퍽 때리며 제 집의 반대편으로 향한다. 그를 위해 산 단 약과는 언제 떨어뜨렸는지 흙이 잔뜩 묻어 곧 개미가 줄을 이뤘다.

 

 

홍중의 하나 있는 누님은 예전부터 그를 아끼다 못해 닳을까 금이야 옥이야 굴었다. 그도 그럴게 검술이며 활이며 글들, 전부 배우고 있는 제 옆에서 허연 다리를 달랑달랑 대며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어찌 측은지심이 들지 않느냔 말이냐. 그게 불쌍해 글도 가르쳐주고 맛난 것도 이것저것 입에 넣어주면 방끗 웃는 모습이 예뻐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런 금쪽같은 동생이 듣도 못한 새에 사람도 아니고 뱀과 혼인을 한다하니 고까워 잠도 잘 수 없었다.

 

오늘도 그게 맘이 들지 않았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인사도 주지 않고 갔는지. 점심을 먹고 나니 괘씸해 참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의 집으로 향했다.

 

이리 오너라, 말도 없이 열린 대문을 들어가선 방문을 세게 열어재끼니 보이는 것은 등을 보이고 자고 있는 제 동생의 모습이었다. 곤히 자는 모습에 쌓인 것들이 사라져 이불이라도 덮어주려 가까이 가니 손에 쥔 비단 주머니가 신경쓰였다.

 

“…이게 뭐야?”

 

그 안에 든 뱀 허물을 본 그녀는 놀라 그것을 떨구었다. 제 동생과 그것을 한번씩 보고 저를 스쳐지나갔던 뱀의 눈깔을 한번 떠올리니 한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내 동생이 드디어 뱀에 홀렸구나.

 

아직 불이 남은 아궁이에 그것을 던져넣으니 짧았던 불길이 급하게 타오르며 매케한 검은 연기를 훌훌 태워보낸다. 집을 휩쌀 정도의 연기가 떠오르자 홍중은 불의 탄내에 놀라 깨서는 꺼먼 재들이 새나오는 주방으로 향했다. 뒤로 넘어진 첫째 누이의 모습이 적잖은 당황스러움을 보여주는 듯 해 묻지 않고 그녀를 데리고 나온 홍중이었다.

 

“대체 무엇을 태우셨습니까?”

 

“니 품에 있던 뱀 허물을 태웠더니….”

 

“네?”

 

급히 제 품을 뒤져보는 홍중의 손길이 다급하다. 비단 주머니를 열어보니 성화가 스쳐지나가듯 했던 말에 심장이 요동쳤다. 머쓱하니 뒷목을 쓸어내리던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아 마을로 뛰쳐나가려던 그는 제 머리색을 생각하곤 우뚝 섰다.

 

“그 뱀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뭐?”

 

“그러니 뱀 눈깔 가진 놈을 보면 누이가 좀 데려와 주세요. 허물을 태우면 여기 혼자 못 온다고 했습니다.”

 

“홍중아….”

 

“일단 돌아가세요. 곧 어두워질 것 같습니다.”

 

제 무릎만 톡톡 쳐대는 그를 본 첫째 누이의 입이 꿀을 바른 마냥 다물어졌다. 조용히 대문을 나서는 누이를 본 그는 대청에 앉아 숨도 덜 쉬어가며 성화를 기다렸다. 보름달이 유난히 큰 날이었다.

 

 

시간은 흘러 반 년이 조금 더 지난 때였다. 뱀 눈을 닮은 호리호리한 사내는 여전히 찾지 못했고 홍중의 초조함은 부풀어 그를 기다릴 여력이 남지 않았다. 흘긋흘긋 자신을 보는 둘째 누이에게 그는 입을 열었다.

 

“찾으러 가야겠다. 돌아오질 않으니 내가 찾아야지.”

 

“그래두 어딜 갔을 줄 알고 그러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아니야, 내가 찾아야겠어.”

 

단호한 홍중의 어투에 둘째 누이는 시무룩해져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탄다면 쉬이 움직일 수 있겠다만, 그는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랬다. 제 부모에게만 조용히 인사를 드린 뒤 떠나는 새벽은 유독 안개가 짙었다.

 

 

첫 날은 막막했다. 아무리 머리칼을 가렸다 하더라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길을 찾아 헤메니 팔이나 종아리나, 생채기가 여기저기 생겼다. 일주일 째 되니 주막의 좋은 방을 어찌 잡고 사람들과 어찌 친해지며 저잣거리 소문을 쉽게 깊이 파고드는 법을 알았다. 그렇게 길거리에 익숙해지다 보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방물장수 중 몇몇은 그가 다니는 곳에 함께 동행해주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혼자 떨어진 어느 날이었다.

 

“거기 나으리, 지금 먹는 거 조금만 나눠주시지 않을라우?”

 

분명 제 옆엔 시꺼먼 새 떼 무리밖에 보이지 않았건만 어디서 소리가 들리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맹랑한 까마귀 한 마리가 홍중이 먹고 있는 고기를 보며 탐을 내는 중이었다.

 

“이젠 까마귀도 말을 하는구나.”

 

“줄거요, 안 줄거요? 딱 한 점만 주면 내 나으리께 좋은 소식 좀 알려드릴게요.”

 

“배도 부른데 남은 거 다 먹고 입이나 열어봐라. 어디 무슨 말인지 듣기나 하자.”

 

까마귀에게 고기를 던져주니 맛나게도 받아먹더니 털을 한번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제 집에 가질 못하는 선비가 이 길을 가다가 제게 하소연을 했더라죠. 눈은 꼭 뱀을 닮아서 피부는 차디찬게 참 사람이 아닌 것 같더랍니다.”

 

“…그 선비가 뭐라고 안하디?”

 

“역시! 여기를 지나가다 절 보고도 놀라지 않는 예쁘장한 나으리가 있으면 자기 얘길 하더라는 거죠. 그게 나으리죠? 맞죠?”

 

“어디로 가디?”

 

“자기 하소연만 하고는 저어기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로 통하는 산이 하나 있는데 제가 길도 잘 알죠. 알려드릴까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따발따발 산의 이름과 들어가는 법, 나가는 법을 알려주는 까마귀의 수다를 말없이 들으며 홍중은 짐짝을 챙겨들었다.

 

“아, 도깨비에 홀렸단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조심하세요!”

 

이 말은 흘겨들으면서.

 

 

산에 조금 들어서니 어둑서니가 보일 법한 밤이 시작됐다. 한시가 바빠 조급히 움직이니 나무뿌리나 가지에 걸려 불이라도 밝히며 자리를 멈췄다. 흘겨들은 까마귀의 말은 이제서야 생각나 잠을 없앴다. 호롱불을 밝히니 그 생각은 다시 까맣게 사라졌지만 험한 산길이 보이기 시작하자 걸음은 점점 느려져 타박타박 걷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거북이 기어가듯 산의 중턱이나 왔을까. 왁자지껄한 소리와 여기까지 진동하는 술내가 홍중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시간에 술판을 벌이는 건 또 무슨 심보인지. 흘긋 그쪽을 바라보니 달 색에 쪽빛, 진달래꽃 따위를 닮은 형형색색의 머리통들을 가진 것들이 모닥불을 피워가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딱 봐도 인간은 아닌 것이 도깨비들의 밤 축제인가 싶어 홍중의 심장이 통 떨어졌다.

 

누가 그랬는가 너무나도 심한 공포는 도리어 용기를 불러낸다고. 빚은 술을 진탕 마셔 알딸딸한 얼굴들이 인간이 나 잡수시오, 하고 지나가도 모를 개판이 슬슬 홍중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덜컹 떨어져 겁을 잃은 심장은 눈에 고대로 옮겨져 가운데 뻥 뚫린 통로를 보기 시작했다. 머리칼을 드러낸 채 도깨비들이 춤추는 사이를 지나가는 새빨간 머리의 인간은 약간 튀기만 할 뿐 의심을 사지 않았다.

 

“어, 박 서방이 말한 지 정인하고 똑같이 생겼네?”

 

개나리 색 머리의 도깨비가 척하니 홍중을 가리키지만 않았어도 그는 무난히 산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뭐? 걘 인간이잖아!”

 

도깨비불들이 도깨비와 함께 훅하니 홍중의 근처로 다가왔다. 앞을 막은 것들에 당황한 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다 뒤에 있는 도깨비를 툭 건들었다.

 

“사람 맞는데? 머리는 왜 이리 붉어?”

 

그 도깨비의 말에 잠깐의 정적이 일대에 찾아왔다.

 

“박 서방 배필이 맞다는 말이야?”

 

유리같던 고요함이 그 질문 하나로 죽 깨진다. 홍중의 주변에 몰려드는 도깨비들의 왁자지껄한 말들에 그는 정신이 혼미했다.

 

“박 서방이 대체 누굽니까?”

 

“누구긴 누구야, 인간 된 뱀 새끼지.”

 

박성화. 석 자의 이름이 홍중의 머리에 떠오른다.

 

“그 사람이 뭐라 안 하던가요? 어디로 간다던가….”

 

다급함에 다시 겁이 사라진 그는 제 말에 대답해준 도깨비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허이구…. 박 서방하고 똑같은데? 기다려, 술이 안 깨서 생각이 안 나네.”

 

“제 정인 찾아 간다는데 이대로 아침까지 붙잡을 생각마소, 그러니 도깨비들도 당신을 감싸고 돌질 않지. 박 서방은 여기서 산 밑 마을 다음에 있는 고을로 간다고 했네.”

 

점잖은 태가 나는 도깨비가 바른 투로 말하자 그는 조금 진정했는지 주변을 살살 바라보다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곤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왜 급히 산 아래로 향하나에 대한 생각은 제각각이었으나 그 누구도 자신들이 무서워 피한다는 것은 떠올리지 않았다.

 

 

홍중은 산을 내려가 보이는 마을에 하루를 묵고 일어나 다시 짐짝을 챙겼다. 유독 어린 아이가 많은 마을이었다. 까르륵대는 아이들 몇몇을 지나쳐 논밭에 들어서니 그 많던 아이는 어디가고 새를 내쫓는 아이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다음 마을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아?”

 

“…그거 주면 알려드릴게요.”

 

손에 끼인 은가락지를 달라하는 당돌한 꼬마의 말에 그는 잠시 어이가 없어 말을 잃었다. 아이는 그런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만 말을 바꿔 다시 요구했다.

 

“그럼 제 노래 한번만 들어주세요.”

 

그 정도의 여유도 없던 것은 아닌지라 홍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맑은 목소리에 기분 좋게 노래를 듣던 그는 귀에 박히는 익숙한 상황들에 다시금 소년을 불렀다.

 

“너 그 노래 누구한테 들었어?”

 

“어떤 선비님이 해주셨어요. 자긴 제 집에 가질 못한다구 그러던데요. 아, 옆마을은 이 길로 가면 나와요.”

 

홍중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드디어 찾았구나 싶은 마음에 긴장과 기대가 교차되었다. 아직 쟁쟁한 해에도 짐짝이 무거움에도 뛰지 않는다면 놓친다는 생각이 더욱 컸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여럿 장사치가 홍중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장이 섰는지 음식 냄새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섞여들어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아무나 붙잡고 혹 이리 생긴 양반을 보지 않았소 물어보기에도 안될 노릇이었으니 일단 묵을 곳이나 잡자며 걸음을 옮겼다.

 

 

밤은 다가오는데 주막에 자리가 나는 집은 없었다. 장사치들도 많은데다 이 마을에 유독 주막집이 없는 탓도 있었다. 한탄을 하다 체면을 놓곤 보이는 기와집의 대문을 터덜터덜 두드렸다.

 

“왜 그러십니까?”

 

“혹 잠을 청할 곳이 없을까요? 어디든 좋습니다. 해가 뜨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별채 쪽 방이 한 군데 남긴 남았는데, 일단 들어오쇼.”

 

대문만 넘어 하인이 뛰어가는 곳을 덩그러니 보고 있었더니 금세 다시 돌아와 그를 별채로 안내한다.

 

“여기 이 방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주인 어른이 편하실대로 쓰라네요.”

 

꾸벅 인사를 하고 이미 준비된 침소를 보자니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이 마을을 떠나지 않았을까, 혹여 내가 자는 동안 엇갈려 다른 곳을 향하지는 않을까. 잠에 취한 몸은 이미 침소에 곤히 뉘여 눈꺼풀을 닫았건만 마음만은 불안해 잘 수가 없었다. 하필 보름달도 고와 창호지 사이에 들어오는 달빛이 밝으니 더욱 예민한 탓도 있었다.

 

잠을 설치기 시작한 그는 바깥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풀벌레 소리와 스산한 바람이 꽤 멀리서 거쳐가는데 이상하게 사람 발자국 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자박자박 걸어오는 소리에 한숨이 섞여있고 짧게 읊조리는 혼잣말이 함께 들려온다. 그 목소리가 꼭 제가 찾아나섰던 그 사람을 닮아 머릿수건도 쓰지 않은 채 밖을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홍중의 머리칼은 달빛을 받아 빛나건만 저 앞에 서있는 작자는 보름달이 뒤에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한 발짝 다가가려 드니 제 사람이 아닐까 머리를 매만지느라 멈추고, 달 밖에 없는데 무슨 상관인가 다시 성큼 발을 옮긴다.

 

“거기 누구십니까?”

 

화들짝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여전히 달에 아른거려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발짝을 더 옮기려는데 제 목소리를 들은 이가 홍중을 향해 빠르게 다가온다.

 

“홍중아,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어떻게….”

 

그의 팔을 꼭 잡은 성화의 손이 차디차다. 걱정에 뛰던 심장이 뭉클어지는 감정에 박동치기 시작했다.

 

“보고 싶어서 찾았어.”

 

짧다면 짧은 말에 그는 홍중을 꽉 끌어안았다. 두 색의 머리칼이 얽혀 꼭 붙고나니 그의 따스한 눈물이 홍중의 목을 타고 흐른다.

 

“많이 기다렸어.”

 

물기섞인 한 마디가 길디 길었던 그들의 사이를 틈도 없이 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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